2009년 6월 7일 일요일

제 14 장 개요

제 14 장
개요 (槪要)
명령을 명령 위에 반복하고 명령을 명령 위에 반복하며, 줄을 줄 위에 반복하고 줄을 줄 위에 반복하여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하니라. - 이사야
465:1
이 장(章)은 저자의 1870년에 판권을 따낸 강의용 책자 초판에서 따온 것이다. 많은 노력의 투입과 높아진 영적 깨달음 후에, 그녀는 이 책을 위해 1875년에 그 저술을 개정했다. 과학적 형이상학을 명료하게 하기 위해 절대적 크리스천 사이언스가 그것의 서술들에 스며들어 있다.
질문과 대답
문 - 하나님은 무엇인가?
답 - 하나님은 육신이 없는, 신성(神性)이며, 지고하고, 무한한 마음, 영, 혼, 원리, 생명, 진리, 사랑이시다.
문 - 이 명칭들은 동의어들인가?
답 - 그렇다. 그 말들은 유일한 절대적인 하나님을 가리킨다. 그것들은 또한 신격(神格)의 본성, 본질, 그리고 총체를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속성은 정의, 자비, 지혜, 선함 등이다.
문 - 하나 이상의 하나님, 즉 하나 이상의 원리가 있는가?
답 - 없다. 원리와 그것의 아이디어는 하나이며, 이 하나가 하나님, 즉 전능하고, 전지하며 무소부재의 존재이며, 그분의 반영이 사람이며 우주이다. 옴니(omni)라는 말은 모두를 뜻하는 라틴어의 형용사로부터 온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권능, 즉 힘 그리고 모든 과학 즉 참된 지식 그리고 현존하는 모든 것을 아울러 가지신다. 크리스천 사이언스의 다양한 구현은 마음을 나타내며, 결코 물질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리고 유일한 마음을 갖는다.
466:7
문 - 영들과 혼들은 무엇인가?
답 - 인간적 믿음에 있어서는, 그것들은 마음과 물질, 생명과 사망, 진리와 오류, 선과 악으로 구성된 인격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쌍들을 이루는 대조적인 어휘들은, 크리스천 사이언스가 밝히는 바와 같이, 서로 반대되는 것들을 나타내는데, 그것들은 같이 거하지도 않고 서로 동화되지도 않는다. 진리는 불멸이다; 오류는 필멸이다. 진리에는 한계가 없다; 오류에는 한계가 있다. 진리는 이지적이다; 오류는 비이지적이다. 더욱이 진리는 실재이고, 오류는 비실재이다. 이 마지막 말은 당신이 가장 마지못해 받아드리게 될 요점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것은 시종일관하여 깨달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다. 혼들이나 영들이라는 말은 마치 신(神)들이라는 말처럼 부적절한 것이다. 혼 즉 영은 신격(神格)을 의미할 뿐이며 그 밖의 어떠한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한정된 혼도 한정된 영도 없다. 혼 즉 영은 유일한 마음만을 의미하며, 복수로 표현될 수 없다. 이교도의 신화와 유대교의 신학이 이지, 혼, 그리고 생명이 물질 안에 있을 수 있다는 그릇된 생각을 영속시켜 왔다; 그리고 우상숭배와 의식주의(儀式主義)는 인간들이 만든 모든 믿음들의 산물(産物)이다. 그리스도 가르침의 과학이 밀로부터 가라지를 분리해내기 위해 손에 키를 들고 온다. 과학이 하나님을 올바르게 선언할 것이며,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인류를 신체적으로 윤리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다 낫게 만듦으로써, 이 선언과 그것의 신성의 원리를 실증할 것이다.
467:1
문 - 혼의 과학이 요구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답 - 이 과학의 첫째 요구는 “너희는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는 것이다. 이 나는 영이다. 그러므로 그 계명은 이것을 뜻한다: 즉, 너희는 영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이지도, 생명도, 본질도, 진리도 사랑도 가지지 말라는 것이다. 두 번째의 것은 “너희는 너희의 이웃을 너희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유일한 마음, 유일한 하나님과 아버지, 유일한 생명, 진리, 그리고 사랑을 가졌다는 것이 철저히 깨달아져야만 한다. 이 사실이 명백해지는 것에 비례하여 인류는 완전하여질 것이며, 전쟁이 그치게 될 것이고 사람사이의 참된 형제관계가 정립될 것이다. 사람이 어떠한 다른 신들도 가지지 않고, 자신을 인도할 유일한 완전한 마음 외에 그 어떤 다른 것에도 의지하지 않을 때, 그리스도 안에도 있던 그 마음을 가진, 순결하고 영원한, 하나님을 닮은 모습이 된다.
과학이 영, 혼을 육체 안에 있지 않는 것으로, 그리고 하나님을 사람 안에 있지 않고 사람에 의해 반영되는 것으로 밝힌다. 더 큰 것이 더 작은 것 안에 있을 수 없다. 더 큰 것이 더 작은 것 안에 있을 수 있다는 믿음이 악을 저지르는 오류이다. 원리가 자신의 아이디어 안에 있지 않다는 것, 이것이 혼의 과학에서의 주요 요점이다. 영, 혼은 사람 안에 갇혀 있지 않다, 그리고 절대로 물질 안에 있지 않다. 우리는 결과로부터 원인으로 불완전하게 추론하는데, 그 때 물질이 영의 결과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연역적 추론은 물질적 존재란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영이 참된 심적인 아이디어를 준다. 우리는 영, 마음을 물질을 통해 해석할 수 없다. 물질은 보지도, 듣지도, 느끼지도 않는다.
마음의 과학에서 원인으로부터 결과로 추론할 때, 우리는 마음을 가지고 시작하는데, 그것은 그것을 표현하는 아이디어를 통해 이해되어야만 하며 그것의 반대인 물질로부터는 알아 질 수 없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진리, 즉 이지에 도달하는데, 그것은 스스로 오류가 없는 아이디어를 전개하며 인간적 환상들과는 절대로 동격이 될 수 없다. 만일 혼이 죄를 범한다면, 그것은 필멸일 것이다, 왜냐면 죄악이란 필멸성 자체이기 때문인데, 그것은 스스로를 죽이기 때문이다. 만일 진리가 불멸이라면 오류는 필멸일 수밖에 없다, 왜냐면 오류는 진리와는 같지 않기 때문이다. 혼은 불멸이기 때문에, 혼은 죄를 범할 수 없다, 왜냐면 죄악은 존재의 영원한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468:8
문 - 존재에 관한 과학적 성명은 무엇인가?
답 - 물질에는 생명도 진리도 이지도 본질도 없다. 모든 것은 무한한 마음이고 그것의 무한한 표현이다, 왜냐면 하나님이 일체의 일체이시기 때문이다. 영은 불멸의 진리이다; 물질은 필멸의 오류이다. 영은 실재하고 영원한 것이다; 물질은 실재하지 않고 일시적인 것이다. 영은 하나님이시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며 모습이다. 따라서 사람은 물질적이 아니다; 사람은 영적이다.
문 - 본질은 무엇인가?
답 - 본질이란 영원한 것이고, 조화롭지 않을 수도 없고 썩어질 수도 없는 것이다. 진리, 생명 그리고 사랑이 본질인 바, 성경이 이 말을 히브리서의 “희망하는 것들의 본질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라는 말씀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다. 마음, 혼, 즉 하나님의 동의어인 영이 유일한 본질이다. 개개의 사람을 포함하는 영적 우주는 영의 신성의 본질을 반영하는 복합적 아이디어이다.
문 - 생명은 무엇인가?
답 - 생명은 신성의 원리, 마음, 혼, 영이다. 생명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시간이 아닌 영원이 생명에 대한 생각을 나타낸다, 그리고 시간은 영원의 일부가 아니다. 다른 한쪽을 인정함에 비례하여 한쪽은 존재하기를 그치게 된다. 시간은 한정적이다; 영원은 영구히 무한하다. 생명은 물질 안에 있지도 않고, 물질로부터 기인하지도 않는다. 물질이라고 이름 하는 것을 영은 모르는데, 그것은 자신 안에 모든 본질을 포함하고 있으며 영원한 생명이다. 물질은 인간적 개념이다. 생명은 신성의 마음이다. 생명은 한계가 없다. 사망과 유한함을 생명은 모른다. 만일 생명에 시작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에는 또한 종말이라는 것도 있을 것이다.
469:7
문 - 이지란 무엇인가?
답 - 이지는 전지(全知), 무소부재, 그리고 전능이다. 그것은 무한한 마음, 하나님이라 이름 하는 삼위일체의 원리, -생명, 진리, 그리고 사랑 -의 근본적이며 영원한 특성이다.
469:12
문. - 마음은 무엇인가?
답. - 마음은 하나님이다. 오류를 근절시키는 것은 선이신 하나님이 유일한 마음이고, 무한한 마음의 가상적인 반대 - 즉 악마 또는 악이라고 하는 것 -는 마음이 아니며, 진리가 아니고 단지 이지나 실재성이 없는 오류일 뿐이라는 위대한 진리이다. 하나의 마음 밖에 있을 수 없다, 왜냐면 한분의 하나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필멸의 존재들이 어떠한 다른 마음도 주장하지 않고 그 밖의 어떠한 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죄란 겪어보지 못한 것이 될 것이다. 만약 그 하나가 무한이라면, 우리는 하나의 마음 밖에 가질 수 없다. 비록 하나님이 무한하시지만, 악이 이 무한함 안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인정하게 되면, 우리는 무한성에 대한 관념을 묻어 버리게 된다, 왜냐면 모든 공간이 하나님으로 채워져 있는 곳에서는 악은 어떤 자리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 즉 선이 무소부재이고 모든 권능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한 후에도, 아직 악이라 이름 하는 또 다른 권능이 있다는 것을 믿을 때, 우리는 전능성의 위대한 의의(意義)를 잃어버린다. 하나 이상의 마음이 있다는 믿음은 마치 고대의 신화나 이교도의 우상 숭배가 그러한 것처럼 신성의 신학에 있어서 치명적이다. 유일한 아버지, 곧 하나님과 더불어 인류의 온 가족이 형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유일한 마음, 그 하나님, 즉 선과 더불어 인류의 형제관계는 사랑과 진리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신성의 과학을 구성하는, 원리와 영적 권능의 일치를 가지게 될 것이다. 하나 이상의 마음의 가상적 존재가 우상숭배의 근본적 오류이었다. 이 오류가 영적 권능의 상실, 닮지 않는 것이 없는 무한한 진리로서의 생명의 상실, 그리고 항상 존재하고 보편적인 것으로서의 사랑의 상실을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다.
470:11
신성의 과학이 다음의 자명한 명제로 하나의 마음만 있다는 추상적 진술을 설명한다: 즉 만일 하나님, 즉 선이 실재이면, 악, 즉 하나님을 닮지 않은 것은 실재가 아니다. 그리고 악은 실재가 아닌 것에 실재성을 부여함으로써 실재인 것으로 보일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유일한 마음만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마음이신 하나님은 결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는데, 어떻게 선이 악으로 타락할 수 있겠는가? 완전함의 기준은 원래 하나님과 사람이었다. 하나님이 그분 자신의 기준을 끌어 내렸는가, 그래서 사람이 타락했는가?
하나님이 사람의 창조자이시다, 그리고, 사람의 신성의 원리가 완전한 상태로 존재하는 한, 사람인 신성의 아이디어 즉 반영도 완전한 상태로 존재한다. 사람은 하나님 존재의 표현이다. 만일 사람이 신성의 완전함을 표현하지 않는 한 순간이라도 있다면, 그렇다면 사람이 하나님을 표현하지 않는 순간이 있었을 것이며, 결과적으로 신격(神格)이 표현되지 않았던 때, -즉 신격의 실체가 없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만일 사람이 완전함을 상실했다면, 그렇다면 그는 신성의 마음인 그의 완전한 원리를 상실한 것이다. 만일 사람이 이 완전한 원리, 즉 마음이 없이 존재한 적이 있다면, 그렇다면 사람의 존재는 하나의 허구일 것이다.
470:32
과학에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 즉 신성의 원리와 아이디어의 관계는 파괴될 수 없다. 그리고 과학은 조화로부터 벗어남도 또 그것으로 돌아감도 알지 못하지만, 신성의 질서 즉 영적 법칙이 그것의 영원한 역사 안에서 변화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도록 계속 유지하는데, 그 안에서 하나님과 그분이 창조하신 모든 것들은 완전하고 영원하다.
진리와 닮지 않은 것, -즉 오류라 이름 하는 것, - 과학의 반대, 그리고 오감들 앞의 증거는, 존재에 관한 위대한 사실들에 대한 조짐을 제공하지 않는다; 이러한 소위 감각들은 지구의 움직임이나 천문 과학에 대한 아무런 암시도 받지 않기 때문에, 자연과학의 권위 하에 있는 천문학상의 정리에 동의하고 만다.
신성의 과학의 사실들은 인정되어야만 한다, -비록 이런 사실들에 대한 증거가 악이나, 물질, 또는 물질적 감각에 의해 지지 받지 않아도 인정되어야만 한다, - 왜냐면 하나님과 사람이 공존한다는 증거는 영적 감각에 의해 전적으로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현재 하나님의 반영이고, 그리고 영원히 그래 왔다. 하나님은 무한하시다, 그러므로 상존하신다, 그리고 그 밖의 어떠한 권능이나 현존(現存)도 없다. 그래서 우주의 영성이 창조에 관한 유일한 사실이다. “하나님은 참 되시나 [물질적]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라.”
471:21
문 - 교리들이나 교의(敎義)들이 사람에게 유익한가?
답 - 저자는 소녀 시절에 정통적인 교의를 신봉했었다, 그리고 그녀가 하나님을 필멸의 감각을 초월해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에 대한 첫 번의 희미한 빛을 보았을 때까지는 그것을 고수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관점이 인간적 믿음들을 꾸짖었고, 신성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들의, 과학을 통해 표현되는, 영적 중요성을 주었다. 그 이래 저자의 가장 높은 교의는 신성의 과학이어 왔으며,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정리된 그것을 그녀가 크리스천 사이언스라고 이름 지었다. 이 과학이 하나님이 유일한 생명임과, 그리고 이 생명이 진리와 사랑이라는 것과, 하나님을 깨닫고, 섬기고, 실증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신성의 진리가 가상적 오류를 내어 쫓고 병든 자를 고친다는 것을 가르친다.
크리스천 사이언스로 인도하는 길은 곧고 좁다. 하나님은 과학에 하나님의 인(印)을 쳐서 그것으로 하여금 실재하는 모든 것과, 그리고 조화롭고 영원한 것과만 동격(同格)이 되도록 한다. 질병과 죄악과 죽음은 부조화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근원이 있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정부(政府)에 속하지도 않는다. 그분의 법이 올바로 깨우쳐지면, 그것들을 파괴한다. 예수님은 이러한 말들에 대한 증명을 해 보이셨다.
472:13
문 - 오류는 무엇인가?
답 - 오류는 쾌락과 고통이, 이지, 본질, 생명이 물질 안에 존재한다는 가정이다. 오류는 마음도 아니며, 마음의 기능들 가운데 하나도 아니다. 오류는 진리의 모순이다. 오류는 깨달음이 없는 믿음이다. 오류는 비실재이다 왜냐면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오류가 참이라면, 그것의 진리는 오류일 것이며, 우리는 틀린 진리라는 자가당착적인 모순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진리의 기준을 계속하여 상실하게 된다.
472:23
문 - 죄악은 없는가?
답 - 모든 실재성은 하나님과 그분의 조화롭고 영원한 피조물 안에 존재한다. 그분이 창조하신 것은 선하며 그분이 만들어진 모든 것은 만드신다. 그러므로 죄악과 질병과 사망에 대한 유일한 실재는, 실재하지 않는 것들이 하나님이 그것들의 가면을 벗겨 버리실 때까지는 인간적인 잘못 된 믿음에게는 실재처럼 보인다는 끔찍한 사실이다. 그것들은 참되지 않다. 왜냐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크리스천 사이언스에서 필멸의 마음이나 몸의 모든 부조화가 허상이라는 것을 배우는데, 이것은 실재하고 정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재성이나 정체성이 없다.
473:4
마음의 과학이 모든 악을 제거한다. 하나님이신 진리는 오류의 아버지가 아니다. 죄악과 질병과 사망은 오류의 결과로 분류되어야만 한다. 그리스도는 죄악에 대한 믿음을 파괴하러 오셨다. 하나님의 원리는 무소부재하고 전능하다. 하나님은 어디든 계시고, 그분을 떠나서는 그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권능도 없다. 그리스도는 이상적인 진리인데, 그것은 크리스천 사이언스를 통하여 죄악과 질병을 치유하기 위해 오며, 모든 권능을 하나님께 돌린다. 예수는, 병든 사람들과 죄인들을 치유하고 사망의 권세를 파괴하는, 하나님의 참된 아이디어인 그리스도를, 다른 모든 사람들 보다 더 보여주었던 사람의 이름이다. 예수는 인간적 사람이고, 그리스도는 신성의 아이디어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이신 예수의 이중성이 있는 것이다.
교회가 전제(專制)를 하던 시대에 예수님은 그리스도교의 진리와 사랑의 증명을 가져옴으로써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 실천을 소개하였다. 그러나 그의 본보기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그리고 죄와 병과 죽음을 치유함으로써 그의 규칙을 따라 그것의 오류 없는 과학을 시험해보기 위해서는, 인격 즉 인간 예수에 대한 이해보다는 하나님을 사랑인 신성의 원리로 더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을 실증으로 확립하셨고, 그리하심으로 그의 말보다 그의 행동에 더 높은 중요성을 부여하셨다. 그는 그가 가르치신 것을 증명하셨다. 이것이 그리스도교의 과학이다. 예수님은 원리가 신성임을 증명하셨는데, 그것이 아픈 이를 고치고 오류를 내어 쫓는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아무도 그의 가르침들과 그것들의 영광스러운 증명들, - 즉, 생명과 진리와 사랑(이 인지되지 않은 과학의 원리)이 모든 오류와 악과 질병과 죽음을 파괴한다는 것을 조금도 깨닫지 못했다.
474:3
그리스도교 초기에 진리가 받았던 대우가 오늘 날에도 반복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과학을 소개하는 사람은 누구든 비웃음을 살 것이며 육신을 가르는 채찍보다 더 심한 채찍으로 매질을 당할 것이다. 그것이 처음 나타나는 무지한 세대에게는, 과학이 하나의 착오로 보인다, -그래서 그것이 잘못 해석됨과 그에 따른 학대를 받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경이들은 (경이란 말은 신약에서 기적이라고 번역되는 그리스어의 단순한 의미임), 이런 경이들의 영광스러운 원리가 터득될 때까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오해되고 오용될 것이다.
만일 죄악과 질병과 죽음이 생명과 진리와 사랑과 같이 실재라면, 그렇다면 그것들은 모두 같은 근원에서 나왔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악과 질병과 죽음을 파괴하러 오셨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폐하러 온 것이 아니오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고 확언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파괴하기 위해 사셨던 죄악이 실재, 즉 신성의 뜻의 산물이라고 믿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오류를 파괴함에 있어서의 진리의 신성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오류가 불멸임에 틀림없단 말인가? 진리는 참된 모든 것을 살려준다. 만약 악이 실재한다면, 진리가 그렇게 만든 것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가 아닌 오류가 비실재의 저자이며, 모든 실재하는 것이 영원한 반면, 비실재는 사라지고 만다. 사도는 그리스도의 사명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말한다. 진리는 허위와 오류를 파괴한다, 왜냐면 빛과 어둠은 같이 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빛이 어두움을 소멸시킨다, 그리고 성경은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진리에게는 오류가 없다, -즉 모든 것이 진리이다. 무한한 영에게는 물질이란 없다, -즉 모든 것이 영, 신성의 원리와 그것의 아이디어이다.
475:5
문 - 사람은 무엇인가?
답 - 사람은 물질이 아니다; 그는 두뇌와 피와 뼈와, 그리고 다른 물질적 요소들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으로 만들어졌다고 우리에게 알려준다. 물질은 그런 모습이 아니다. 영의 모습이 그렇게도 영과 다를 수 없다. 사람은 영적이고 완전하다; 그리고 그는 영적이고 완전하기 때문에, 그는 크리스천 사이언스에서 그렇다고 이해되어야만 한다. 사람은 사랑의 아이디어, 형상이다; 그는 육체적 구조물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복합적 아이디어로, 모든 옳은 아이디어들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을 반영하는 모든 것들을 뜻하는 포괄적인 단어; 과학 안에서 발견되는 존재에 관한 의식상(意識上)의 정체(正體), 과학에서는 사람은 하나님, 즉 마음의 반영이며 따라서 영원함;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마음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는 것; 하나님으로부터 연유한 것이 아닌 성질은 단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는 것; 자기 자신의 생명이나 이지나 창조력을 소유하지 않고, 단지 자신의 창조주에 속한 모든 것을 영적으로 반영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고 말씀하셨다.
사람은 죄와 질병과 죽음을 겪을 수 없다. 실재 사람은 성스러움으로부터 떠날 수도 없으며, 자신으로부터 사람을 진화하도록 하신 하나님께서 죄지을 수 있는 능력이나 죄지을 자유를 유발시킬 수도 없다. 필멸의 죄인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다. 필멸의 존재들은 불멸의 존재들의 모조품들이다. 그들은 사악한 존재, 즉 유일한 악의 자녀들이며, 그것이 인간은 흙에서, 즉 물질적 태(胎)로부터 시작한다고 선언한다. 신성의 과학에서, 하나님과 실재하는 사람은 신성의 원리와 아이디어로서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오류는 그것의 마지막 한계까지 몰아 부치면 자멸한다. 오류는 혼이 육신 안에 있고, 생명과 이지가 물질 안에 있으며, 이 물질이 인간이라는 것을 주장하기를 그칠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원리이며, 사람은 하나님의 아이디어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필멸이지도 물질적이지도 않다. 필멸의 존재들은 사라질 것이며, 불멸의 존재들, 즉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람의 유일하고 영원한 진실로서 나타날 것이다. 필멸의 인간들은 하나님의 타락한 자녀들이 아니다. 그들은 존재의 어떤 완전한 상태, 나중에 다시 회복될지도 모르는 상태를 가진 적이 한번도 없다. 그들은 인간적 역사의 시초부터 “죄악 안에 잉태되고 사악함 안에서 태어났다.” 필멸성은 궁극적으로 불멸성에 삼켜지고 만다. 죄와 질병과 사망은 불멸의 사람에게 속한 사실들에게 자리를 내어 주기 위해 사라져야만 한다.
476:21
필멸의 존재여, 이것을 배우라, 그리고 사람의 영적 신분을 진지하게 추구하라, 그것은 모든 물질적 자아의 밖에 있다. 성경이 필멸의 인간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을 기억하라: “인생은 그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 곳이 다시 알지 못하니라.”
예수님이, 인간의 자녀들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해 말씀하실 때,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고 하셨다, 즉 진리와 사랑이 실제의 사람 안에서 다스리고 있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사람은 타락하지 않고 영원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과학 안에서 완전한 사람을 보셨는데, 그는 필멸의 존재들에게는 죄짓는 필멸의 인간으로 나타나는 곳에서 그분께 나타났던 것이다. 이 완전한 사람 안에서 구세주는 하나님 자신의 모습을 보셨으며, 사람에 관한 이 올바른 견해가 병자를 고쳤던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하고, 보편적이라는 것과, 사람은 순수하고 거룩하다는 것을 가르치셨다. 사람은 혼을 위한 물질적 거처가 아니다; 그는 그 자신이 영적이다. 혼은, 영이기 때문에, 불완전하거나 물질적인 것 어느 것 안에서도 볼 수 없다.
물질적인 것은 무엇이 되었든 필멸이다. 오감에게는 사람이 물질과 마음이 결합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크리스천 사이언스는 사람을 하나님의 아이디어로서 드러내고, 육신적 감각들이 필멸적이고 잘못된 허상들이라는 것을 선언한다. 신성의 과학은 물질적 육신이, 물질의 가장 높은 층인, 마음이라고 잘못 이름 지어진 것과 섞여 짜여졌을망정, 사람일 수는 없다는 것, - 즉 진짜이고 완전한 사람, 존재의 파괴될 수 없고 영원한 불멸의 아이디어일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사람은 절멸되고 말았을 것이다.
477:19
문 - 육신과 혼은 무엇인가?
답 - 정체(正體)는 영의 반영, 즉 사랑인 살아 있는 원리의 여러 형태들을 통한 반영이다. 혼은 사람의 본질이며 생명이며 이지이다, 그것은 개별화되어 있지만 물질 안에 있지 않다. 혼은 영보다 열등한 것은 절대로 아무것도 반영할 수 없다.
사람은 혼의 표현이다. 인디언들이 어떤 아름다운 호수를 “위대한 영의 미소”라고 이름 지었을 때, 그들은 근원적인 실재성을 약간이나마 일별 했던 것이다. 혼을 표현하는 사람과 분리되어서는 영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사람은, 영으로부터 분리되면 자신의 실체를 잃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분리는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다, 왜냐면 사람은 하나님과 공존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필멸성 안에서 혼이나 불멸성에 관한 어떠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가? 심지어 자연과학의 가르침에 의한다 하더라도, 인간은 한번도 영이나 혼이 육신을 떠나거나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적이 없다. 인간적 믿음의 주장을 제외하고 보면, 내재(內在) 한다는 영에 대한 이론의 근거가 어디 있는가?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어떤 집에 들어가거나 그로부터 나오는 것이 결코 보인 적도 없고, 그들이 창을 통해 보인 적조차도 없을 때, 그 집이 거주되고 있다는, 그리고 그것이 어떤 종류의 사람에 의해 거주되고 있다는 주장의 생각은 무엇일까? 누가 육신 안의 혼을 볼 수 있는가?
478:14
문 - 두뇌가 생각을 하는가, 신경이 느끼는가, 그리고 물질 안에 이지가 있는가?
답 - 아니다, 하나님이 참되시고 필멸의 인간이 거짓말쟁이라면 그렇지 않다. 물질 안에 고통이나 쾌락이 있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그 안에서의 자연적 기능의 수행이 가장 덜 주목을 받는 육신이 가장 조화롭다. 물질이 비이지적이고 뇌세포가 생각을 할 수 없는데 어떻게 물질 안에 이지가 거할 수 있겠는가? 물질은 마음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오류가 “나는 사람이다;”라고 말하지만 이 믿음은 필멸적이며 실제와는 거리가 멀다. 처음부터 끝까지, 필멸적인 것은 무엇이나 물질적 인간적 믿음들로 구성되어 있을 뿐 다른 것으로 되어 있지 않다. 하나님을 반영하는 것만이 실재한다. 바울은 말하기를,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를 기쁘시게 하였을 때에 ....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였다.”고 했다.
필멸의 인간이란 말은 사실상 모순 된 말이다, 왜냐면 사람은 죽어야 한 존재가 아닐 뿐 아니라 “실로 그럴 수도 없고;” 사람은 불멸이기 때문이다. 만일 아이가 육체적 감각의 소생이고 혼의 소생이 아니라면, 그 아이는 영적 근원이 아닌 물질적 근원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어떤 어미가 무슨 진리를 가지고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라는 성경에 나오는 즐거움을 말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반면에, 무엇이든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그것은 필멸적 이거나 물질적일 수 없다; 그것은 불멸이며 영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479:8
물질은 스스로 존재하지도 않고 영의 소생(所生)도 아니다. 수정체 위에 반영되는, 필멸의 생각의 영상이 눈이 보는 모든 것이다. 물질은 볼 수도, 느낄 수도, 맛을 볼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다. 그것은 스스로를 인식하지 못한다, -즉 자신을 느낄 수도, 볼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소위 필멸의 마음을 치워버려라, 그것이 물질의 가상적인 자아를 구성한다, 그리고 물질은 물질에 대한 어떠한 인식도 할 수 없다. 우리가 죽었다고 하는 것들이 행여나 보거나 듣거나 느끼고 육신적 감각의 어느 부분이라도 사용하는가?
479:18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창세기 1:1,2) 광막한 영원 안에서의, 존재의 과학과 진리 안에서의, 유일한 사실들은 영과 그것의 무수한 창조물들이다. 어두움과 혼란은 빛과, 깨달음과 그리고 영원한 조화에 대한 가상적인 반대들이며. 그것들은 무(無)의 요소들이다.
479:27
우리는 흑색이 색깔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다, 왜냐면 그것은 아무런 빛도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악에 대해서도 정체성이나 권능이 부인되어야만 한다, 왜냐면 악에는 신성의 빛깔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바울은,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된다.”(로마서 1:20)고 말한다.
480:1
크리스천 사이언스를 통해 영의 본질이 나타날 때에 물질의 존재하지 않음이 인정된다. 하나님의 영이 있는 곳에서는, 그리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은 없는데, 악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 즉 영의 실재물과는 반대가 된다. 만일 영적 반영이 없다면, 공허의 어두움만 남아 있을 것이며 천국의 기미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480:8
신경은 물질 안에 감각이 있다는 믿음의 한 요소인데, 물질에는 감각이 없다. 의식은, 행위에서와 마찬가지로 마음의 다스림을 받는다, -즉 과학이 밝혀주는 모든 것들의 근원이며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안에 있다. 물질적 감각은 과학으로부터 동떨어져 비실재 안에서 그것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 조화로운 행위는 하나님이신 영으로부터 나온다. 부조화에는 원리가 없다; 그것의 행위는 오류이며 사람이 물질 안에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부조화가 물질을 이지(理智), 즉 혼의 원인일 뿐 아니라 결과로 만들고, 그럼으로써 마음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고자 시도한다.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다. 다시, 하나님, 즉 선은 절대로 죄를 범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드시지 않았다. 사람들로 하여금 잘못된 짓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선의 반대, -즉 악이다. 그러므로 악은 하나의 허상일 뿐이며 그것에는 어떠한 실제적 근본도 없다. 악은 잘못된 믿음이다. 하나님이 그것의 저자가 아니시다. 악의 가상적 부모는 하나의 거짓말이다.
480:26
성경은 “만물은 그(신성의 말씀)에 의하여 지은 바 되었으며, 이미 지음 받은 것 가운데 그가 없이 지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더라”고 선언한다. 이것이 신성의 과학의 영원한 진리이다. 만약 죄악과 질병과 사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깨달아진다면, 그것들은 사라질 것이다. 마치 증기가 태양 앞에서 걷혀 없어지듯, 악 또한 선의 실재성 앞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감추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선을 실재하는 것으로 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사람은 영이신 하나님께만 종속되어 있을 뿐, 다른 어느 것에도 종속되어 있지 않다. 하나님의 존재는 무한이고, 자유이고, 조화이며, 끝없는 기쁨이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다.” 옛날의 대제사장들처럼, 사람은 “지성소에 들어 갈”, -즉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 갈 자유가 있다.
481:7
물질적 감각은 인간들이 하나님이신 영을 이해하는 것을 조금도 도와주지 않는다. 오직 영적 감각만을 통하여, 사람은 하나님을 이해하고 사랑한다. 마음의 과학에 대한 물질적 감각들의 여러 가지 반대들은 보이지 않는 진리를 바꾸지 않으며, 이 진리는 영원히 온전한 채로 남아있다. 지식의 금단의 열매는, 그것에 대해서 지혜가 인간에게 경고하고 있는데, 오류의 증언으로서 존재가 죽음에 좌우되며 선과 악이 뒤섞일 수 있다고 선언한다. 이것이 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즉, 물질적 믿음의 이러한 성장에 관한 성서의 의미인 바, 그것에 대해 성경은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한다. 인간의 가설은 처음에는 질병과 죄악과 사망의 실재성을 가정하고 다음에는 이 악들의 인정된 현실성 때문에 그것들의 필연성을 가정한다. 이러한 인간의 판단들이 모든 부조화를 가져오는 것들이다.
만일 혼이 죄를 범한다면, 그것은 필멸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죄악에는 스스로를 파괴하는 요소들이 있다. 그것은 스스로를 유지할 수 없다. 만인 죄악이 지속된다면 하나님이 그것을 지원해주심에 틀림없을 것이나,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면 진리는 오류를 지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혼은 사람의 신성의 원리이며 결코 죄를 범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혼의 불멸성이 있는 것이다. 과학에서 우리는 죄를 범하는 것은 물질적 감각이지 혼이 아니라는 것을 배운다. 그리고 상실되는 것은 죄에 대한 감각일 뿐 죄지은 혼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성경을 읽을 때 혼이라는 말을 감각이라는 말로 대체하면 대부분의 경우 정확한 의미를 나타낸다.
482:3
인간의 생각이 혼을 물질 안에 거하는 악하기도 하고 선하기도 한 이지라고 가정함으로써 혼이란 말의 의미를 격하시켰다. 혼이란 말의 적절한 사용은 신적(神的)인 의미가 요구되는 곳에서는 하나님이란 말로 대체함으로써 항상 이루어질 수 있다. 다른 경우에는 감각이란 말을 사용하면 과학적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크리스천 사이언스에서 사용되는 바와 같이 혼은 정확히 영 즉 하나님의 동의어다. 그러나 과학 밖에서는 혼은 감각, 즉 물질적 감각과 동일시된다.
문 - 병든 사람들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설명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한가?
답 - 그렇다, 그리스도가 “길”이고 모든 오류를 쫓아내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부르셨지만 요셉의 아들이라고는 하시지는 않았다. 여자란 여러 속(屬) 가운데 하나의 종(種)일뿐이므로 그는 문자 그대로 사람의 아들이었다.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에 대한 인간의 최상의 개념이었다. 그는 메시아인 그리스도, 즉 육신 밖의 하나님의 신성의 아이디어와 분리될 수 없었다. 이것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자신의 물질에 대한 통치를 실증할 수 있도록 하였다. 천사들이 옛날의 현자들에게 이러한 이중적 나타남을 알렸었고, 어느 시대에나, 천사들이 믿음을 통해, 굶주려 하는 심정에게 이것을 속삭인다.
질병은 진리가 쫓아내는 오류의 부분이다. 오류는 오류를 쫓아내지 않는다. 크리스천 사이언스는 진리의 법칙이며 이것이 유일한 마음, 즉 하나님의 바탕 위에서 병든 이를 치유한다. 그것은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치유할 수 없다, 왜냐면 인간, 즉 필멸하는 소위 마음은 치유자가 아니라, 질병에 대한 믿음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483:1
그렇다면 약이나 위생이나 동물적자기론(動物的磁気論)이 어떻게 치유하는가? 하는 질문이 따르게 된다. 그것은 치유를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질병을 다른 하나의 질병으로 바꿈으로써, 일시적으로 고통을 덜어줄 뿐이라는 것을 단언할 수 있다. 우리는 질병을 오류라고 분류하는데, 이것은 오직 진리 즉 마음만이 치유할 수 있으며, 이 마음은 인간적이 아닌 신성의 마음이어야만 한다. 마음은 모든 다른 권능을 능가하며, 궁극적으로 치유에 있어 모든 다른 방법들을 초월할 것이다. 과학으로 치유하기 위해서는 당신은 과학의 윤리적이고 영적인 요구들에 대해 무지해서도 안 되고 그것들에 불복종해서도 안 된다. 윤리적 무지나 죄악이 당신의 실증에 영향을 주고, 크리스천 사이언스 안에서의 기준에 도달하는 것을 방해한다.
저자의 성스러운 발견 후, 저자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과학”이라는 이름을, 육신의 감각에는 “오류”라는 이름을, 마음에는 “본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과학이 이 문제와 그것에 대한 실증을 위해 싸우도록 세상에 선포했으며, 이 실증이 병든 사람을 고치고 오류를 파괴하며 보편적 조화를 드러낸다. 그들 타고난 크리스천 사이언스 신자들에게, 즉 옛날의 훌륭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에게는 하나님께서, 절대적인 문자의 형태로는 아니었지만, 크리스천 사이언스의 정신을 분명히 드러내 주셨다.
마음의 과학이 보통의 과학계의 학파들에게 불명예를 안겨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 과학이 반대를 받는데, 이들은 물질적 관찰들에만 전력을 다한다; 그러나 어떤 체제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드린다면, 그것은 모든 생각 있는 사람들의 반대가 아닌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그런데 크리스천 사이언스는 다른 어떠한 이론이 하는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그분께 영광을 드리며, 그것은 그분이 시키시는 방법대로, 신성의 이름과 본성을 통해 많은 놀라운 일들을 함으로써 이를 수행한다. 누구든 겁이나 위선 없이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여만 한다, 왜냐면 훌륭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일은 비이기적으로 수행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그것의 절대적 과학에 도달하기까지는, 절대로 신성의 원리 위에 기초를 두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오류가 없는 것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이루어지면, 교만도 편견도 편협함도 그리고 질투심도 그것의 기초를 휩쓸어 버릴 수 없다, 왜냐면 그것은 바위, 즉 그리스도 위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484:6
문 - 크리스천 사이언스, 즉 형이상학적 치유는 약물, 물질적 섭생법, 메스머리즘, 최면술, 접신학, 또는 강신술을 포함하는가?
답 - 그중 어느 하나도 그 안에 포함되지 않는다. 신성의 과학에서는 가상적인 물질의 법칙들이 마음의 법칙에 굴복한다. 자연 과학 그리고 물질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들은 필멸의 마음의 객관적 상태들이다. 물리적 우주는 필멸의 존재들의 의식적 그리고 무의식적 생각들을 표현한다. 물리적 힘과 필멸의 마음은 하나이다. 의약들과 위생학은 신성의 마음의 지배권을 반대한다. 의약들과 자력(自力)으로 움직일 수 없는 물질에는 의식이 없다, 즉 마음이 없다. 의약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으로 상정되는 어떠한 결과들은, 실제로는 그릇된 인간적 의식이 느끼도록 교육받은 그것들에 대한 믿음에 의해 생긴 것이다.
메스머리즘은 필멸하는 물질적 환상이다. 동물적자기론은 모든 형태로 나타나는 오류의 자발적 또는 비자발적 작용이다; 그것은 신성의 과학에 대한 인간적인 정반대의 것이다. 과학은 물질적 감각에 대해 그리고 진리는 오류에 대해 승리하여야만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그릇된 이론들과 수행들에 관련된 가정들에 종지부를 찍어야만 한다.
문 - 물질성은 영성의 부수적 성질인가, 그리고 물질적 감각은 영을 이해하고 표현하는데 필요한 전제인가?
485:1
답 - 만일 진리를 정의하거나 밝히는데 오류가 필요하다면, 대답은 그렇다 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아니다. 물질적 감각이란 모순 된 말이다, 왜냐면 물질에는 감각이 없기 때문이다. 과학은 물질이 아닌 마음이 보고, 듣고, 느끼고, 말한다고 선언한다. 무엇이 되었든 이 선언을 부인하는 것은 그릇된 관념이며, 이것이 언제나 인간들을 질병과 죄악과 사망 안으로 팔아넘기고 만다. 만일 중요하지 않은 것들과 악(惡)이 나타났다가, 그것들의 효용성이 없음이나 사악(邪惡)함으로 인해 금방 사라지고 만다면, 그렇다면 오류라고 하는 이러한 덧없는 관점들은 진리에 의해 말소되어야만 한다. 인간들에게 죄악과 질병과 사망을 더욱 더 실재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만드는 방법을 가르친다고 하여 왜 크리스천 사이언스를 헐뜯는가?
물질로부터 조용히 빠져 나와 영 안으로 들어가라. 모든 것들의 영적 궁극에 반대할 생각을 말고, 더 나은 건강과 품행을 통해서 그리고 영적 성장의 결과로써 자연스럽게 영안으로 들어오라. 죽음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깨달음이 사람을 불멸로 만든다. 생명이 물질 안에, 또는 혼이 육체 안에 있을 수 있고 인간이 흙이나 알로부터 출생했다는 믿음은 필멸인 오류의 결과인데 그리스도, 즉 진리가 존재의 영적 법칙을 충족시킴으로써 이 오류를 파괴하며, 이 법칙 안에서는 사람은 마치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완전하심”과 같이 완전하다. 만일 생각이 그것의 지배권을 다른 권능들에게 넘겨준다면, 그것은 자신의 아름다운 형상들을 몸 위에 그릴 수 없게 되고, 오히려 그것들을 지워 없애고 질병과 죄악이라고 부르는 이질적 요소들을 묘사하게 될 것이다.
신화에 나오는 이방의 신들은, 마치 신경이 감각을 통제한다거나 근육이 힘의 척도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쟁과 농사를 통제했다. 힘이 물질 안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체력이 지렛대 안에 있다고 하는 것과 같다. 물질 안에 있는 어떤 생명이나 이지에 대한 개념은 사실상 근거가 없는 것이며, 당신이 허위의 진짜 성질을 알게 되면 허위에 대해 어떠한 신뢰도 가질 수 없게 될 것이다.
486:4
어떤 사고가 눈에 생기고, 다른 사고가 귀에 생기고, 모든 육신적 감각이 침묵하게 될 때까지, 또 다른 사고가 계속 생긴다고 상상해 보라. 사람의 치유책은 무엇인가? 그가 이러한 감각들을 회복하기 위해 죽어야 하는 것인가? 그러한 경우에 마저도 사람이 불멸의 의식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그는 영적 이해와 영적 감각을 획득해야만 한다. 지상에서의 예비 학교는 극한에 이르기까지 활용되어야만 한다. 실제에 있어 사람은 결코 죽지 않는다. 사람이 죽는다는 믿음이 그의 과학적 조화를 확립시켜주지 못할 것이다. 사망은 진리의 결과가 아니라, 오류의 결과이다, 그리고 하나의 오류가 다른 오류를 수정하지 아니할 것이다.
예수님은 못 자국으로써 그의 육신이 사망 직후에도 사망 전과 같다는 것을 증명하셨다. 만일 사망이 사람에게 시력과 소리와 힘을 사람에게 복원시켜준다면, 그때는 사망은 적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보다 더 좋은 친구일 것이다. 아 슬프다, 믿음의 맹목적임이여, 그것이 조화를 사망과 물질의 조건부가 되게 하고, 마음이 조화를 생성할 수 없다고 가정하다니! 믿음의 이 오류가 남아 있는 한, 인간들은 믿음 안에서 계속 필멸하게 될 것이며 우연과 변화의 지배 하에 놓일 것이다.
사람의 시력과 청력과 모든 영적 감각들은 영구적이다. 그것들은 상실될 수 없다. 그것들의 실재성과 불멸성은 물질 안에 있지 않고 영과 깨달음 안에 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들의 영구성이 있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사람은 신속히 절멸되고 말았을 것이다. 만일 육신의 오감이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이해하는 매개체라면, 그렇다면 마비, 눈이 멈, 그리고 귀를 먹음이 사람을 심히 괴로운 지경에 처하게 할 것이며, 그곳에서 그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사람들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러한 재앙들은 왕왕 인간들로 하여금 행복과 존재에 관한 더 높은 의미를 찾도록 하고 발견하도록 만든다.
생명에는 사망이 없다. 생명은 사람의 근원이며 궁극으로서, 결코 사망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위 사망이라고 하는 것의 이전에도 이후에도 진리의 길을 걸음으로써 얻어진다. 물질적으로보다 영적으로 보고 듣는 것에 더한 그리스도교 정신이 있다. 마음의 기능들의 상실에서 보다 그것들의 영구적인 사용에 더한 과학이 있다. 마음이 존재하는 한, 그것들은 상실될 수 없다. 이것을 이해함이 수세기 전에 눈 먼 사람들에게 시력이 주었고, 귀가 먼 사람들에게 청력을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놀라운 일은 반복될 것이다.
487:13
문 - 당신은 믿음에 대해 말한다. 믿는 것은 누구 또는 무엇인가?
답 - 영은 모든 것을 안다; 이것이 믿어야 할 필요성을 제외시킨다. 물질은 믿을 수 없다, 그리고 마음은 이해한다. 육신은 믿을 수 없다. 믿는 자와 믿음은 하나이며 필멸이다. 그리스도의 증거는 과학, 즉 실증할 수 있는 진리 위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이는 불멸의 마음으로부터 흘러나온다, 그리고 사실상 필멸하는 마음 같은 것은 없다. 단순한 믿음은, 그것의 희망의 이유를 설명하는 원리가 없는 맹목(盲目)의 상태이다. 생명이 감각력이 있고 이지가 있는 물체라고 하는 믿음은 잘못된 것이다.
야고보 사도는 말하기를 “행함이 없는 네 신앙을 내게 보이라. 그러면 내가 행함으로 내 신앙을 네게 보이리라.”라고 했다. 생명이 하나님, 즉 영이시라는 깨달음이, 생명의 죽음이 없는 실재성과 그 전능성과 불멸성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굳게 해줌으로써 우리의 사는 날수를 늘여준다.
이러한 신앙은 이해된 원리에 의지한다. 이 원리가 병든 이들을 온전하게 만들며, 사물들의 영속하고 조화로운 국면들을 드러나도록 한다. 우리의 가르침들의 결과가 그것들의 충분한 확증이 된다. 이러한 가르침들의 힘을 기반으로 당신이 심각한 질병을 없앨 수 있을 때, 그 치유가 당신이 이 가르침을 이해했다는 것을 보여 주고, 따라서 당신은 진리의 축복을 받는다.
보통 믿음(belief)이라고 번역되는 히브리말과 그리스말은 영어의 동사 믿다(believe)가 전달하는 의미와는 의미상 조금 다르다; 그것들은 신뢰, 이해, 신용, 항구성, 확고함 같은 의미를 더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번역본에서의 성경은 믿음을 승인하고 보증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은 그것들은 이해의 필요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488:14
문 - 육신의 오감이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가?
답 - 크리스천 사이언스가 불멸의 증거로써 어떠한 물질적 감각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견지하고, 이러한 소위 감각들을 필멸의 믿음들이라고 정의하는데, 사람에 관해서나 그의 창조주에 관한 그것들의 증언은 진실일 수가 없다. 육신적 감각들은 영적 실재성과 불멸성을 인지할 수 없다. 신경들에게는 식물의 섬유질에 감각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감각이 없는데, 믿음이 그것들에게 부여하는 것 외에는 없다. 마음만이 모든 기능들과 지각과 이해력을 소유한다. 그러므로 심적인 자질들은 생체조직과 부패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 그렇지 않다면 바로 벌레들이 사람을 해체해버릴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사람의 실제 감각들이 상해를 입을 수 있다면 혼이 그것들을 그 모든 완전함으로 재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어지럽혀 지거나 파괴될 수 없다, 왜냐면 그것들은 물질 안이 아닌, 불멸의 마음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489:1
물질 안에 마음이 더 적게 나타날수록 더 낫다. 생각이 없는 가재가 그것의 집게발을 잃었을 때. 그것은 다시 자란다. 만일 생명의 과학이 이해된다면, 마음의 감각들은 절대 상실되지 않으며 물질에는 감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의 관절이 마치 가재의 집게발처럼 쉽사리 대체될 것이다, - 인공 관절이 아닌 진짜 관절로 말이다. 생명이 물질 안에 있다고 가정하는 어떤 가설이라도 하나의 교육된 믿음이다. 유아시절에 이 믿음은 손을 입으로 인도하기에도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의식이 발달됨에 따라 이 믿음은 사라지게 된다, - 즉 영원한 생명의 실재성에 굴복한다.
육신의 감각은 속이고 거짓말한다; 그것은 자신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모세의 십계명 모두를 깬다. 그렇다면 이 감각이 어떻게 사람에게 신성의 축복이나 깨달음을 전하는 하나님이 주신 통로가 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반영하는 사람이 어떻게 알고, 듣고, 보기 위해 물질적 수단에 의존할 수 있겠는가? 사람의 감각들이 어느 때는 하나님을 반대하는 죄를 짓는데 사용되는 매개체가 되고, 다른 때에는 하나님은 복종하는데 쓰이는 매개체가 된다고 누가 감히 말 할 수 있는가? 긍정적인 답변은 성경과 모순이 될 것이다, 왜냐면 같은 샘이 단물과 쓴 물을 내보내지 않기 때문이다.
육신적 감각들이 악 즉 오류의 유일한 근원이다. 크리스천 사이언스가 그것들이 거짓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왜냐면 물질에는 감각이 없으며, 어떠한 유기적 구성물도 그것에 청력이나 시력을 줄 수 없고 그것을 마음의 매개체로 만들 수도 없기 때문이다. 사물들의 물질적 감각의 바깥에서는 모든 것이 조화롭다. 하나님, 사람, 그리고 창조에 관한 그릇된 의미는 무의미(無意味), 즉 의미가 결여된 것이다. 필멸의 믿음은 물질적 감각들이 어느 때는 좋도록 어느 때는 나쁘도록 하고 싶어 한다. 그것은 인간들에게 죄악 안에 진짜 쾌락이 있다는 것을 확신시켜준다; 그러나 크리스천 사이언스의 위대한 진리들이 이 오류에 이의를 제기한다.
의지력은 믿음의 소산일 뿐이며 이 믿음이 조화를 약탈한다. 인간의 의지는 하나의 동물적 성향일 뿐, 혼의 기능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람을 올바로 다스릴 수 없다. 크리스천 사이언스는 진리와 사랑이 사람의 원동력(原動力)이라는 것을 밝힌다. 의지 - 즉 맹목적이고, 고집스럽고, 무모한 의지- 는 욕망과 격정과 손을 잡는다. 이러한 협조로부터 악이 생긴다. 이것으로부터 또한 그것의 무력함이 온다, 왜냐면 모든 권능은 선이신 하나님께 속하기 때문이다.
490:12
마음의 과학이 깨달아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깨달아질 때까지는 인간들은 다소라도 진리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이론들은 인간을 조화롭게 또는 불멸이 되도록 만드는데 있어서 스스로는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 왜냐면 크리스천 사이언스에 의하면 인간은 이미 그러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유일한 필요는 이것을 알고 실제 사람의 신성의 원리, 즉 사랑을 실천하도록 하는 것이다.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라.” 인간의 믿음 - 즉 소위 물질적 감각들로부터 얻어진 지식 - 은 공정한 논리에 의해 진흙의 해체되는 요소들로 사람을 절멸시키고자 한다. 사람의 본성과 근원에 대한 과학적으로 그리스도교적인 설명이 불멸의 증언으로써, 모든 물질적 감각을 파괴한다. 이 불멸의 증언이 존재에 관한 영적 감각을 안내해 들여오는데, 이것은 다른 어떠한 방법으로도 획득되어질 수 없다.
수면과 최면술이 물질적 감각의 근거가 없는 성질을 설명해준다. 수면은 물질적 감각이 무의식, 즉 무(無)이거나 허상, 즉 꿈임을 보여준다. 믿음의 최면술적 환상 하에서 사람은 자신이 따뜻한데도 얼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며, 자기가 땅 위에 있는데도 수영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바늘로 찔러도 아프지 않을 것이다. 달콤한 향내도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동물적 자기론(磁気論)은 물질적 감각을 이렇듯 폭로하고, 그것이 실제적 근본이나 정당성이 없는 하나의 믿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믿음을 바꾸어 보라, 그러면 감각이 변화한다. 믿음을 파괴해 보라, 그러면 감각이 사라진다.
491:7
물질적 인간은 무의식적 오류와 의식적 오류로, 부정적 바름과 긍정적 그름으로 구성되는데 후자가 스스로를 바르다고 칭한다. 사람의 영적 개체성은 결코 그르지 않다. 그것은 사람의 창조자의 모습이다. 물질이 인간들을, 참 근원 그리고 존재에 관한 사실들과 연결시킬 수 없는데, 이 안에서 모든 것이 종결되어야만 한다. 오직 물질의 주장들을 무효화시키는 영의 패권(覇權)을 인정함으로써만, 인간들은 필멸성을 벗어버릴 수 있게 되고, 자신의 창조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신성의 모습 안에서 사람을 영원히 확립시켜주는 파괴할 수 없는 영적 고리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물질과 마음이 하나라고 하는 믿음, -즉 물질이 한 때는 깨어있고 또 다른 때는 잠들어 있고, 어떤 때는 어떠한 마음의 형상도 표현하지 않는다는 믿음, - 이 믿음이 사람이 죽는다는 또 다른 믿음으로 끝난다. 과학이 물질적 인간은 결코 실제적 존재가 아님을 밝혀준다. 우리의 눈이 감겨있건 뜨여있건, 꿈 즉 믿음은 계속된다. 잠 속에서, 기억과 의식은 육신으로부터 떠나서 분명히 그들 자신들만의 분리된 화신(化身)을 가지고 그들이 원하는 곳에서 떠돈다. 개성은 사람의 개체성이 아니다. 사악한 인간이 어떤 매력적인 개성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우리가 깨어 있을 때, 우리는 물질의 고통과 쾌락을 꿈꾼다. 누가 있어서, 혹 그가 크리스천 사이언스를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그 꿈을 꾸는 사람보다는- 이 꿈이 필멸의 인간이 아닐지 모른다고 말할 것인가? 소위 꿈꾸는 사람은 무의식 상태에 있지만, 그 꿈이 필멸의 인간을 육신과 생각 안에 온전한 채로 두고 떠나는데, 누가 논리적으로 다르게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올바른 추론을 위해서는 사고 앞에 단 하나의 사실, 즉 영적 존재만이 있어야만 한다. 생명은 그것과 같지 않은 필멸성과 결합될 수 없기 때문에, 실제로는 다른 어떠한 존재도 없다.
492:7
존재는 성스러움이요, 조화요, 불멸성이다. 이것에 대한 약간의 지식만 있어도, 필멸적 존재들의 육신적, 윤리적 기준을 높여 주고, 수명을 늘여주며, 품격을 정화하고 고상하게 해준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었다. 그리하여 진보가 최종적으로 모든 오류를 파괴할 것이며, 불멸성이 밝히 드러나도록 할 것이다. 좋다고 판명된 설명은 옳은 것임이 틀림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새로운 생각들이 꾸준히 발언권을 획득하고 있다. 이 두 가지의 모순 되는 이론들 - 즉 물질이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 또는 모든 것이 마음이라는 것 -가운데 어느 하나가 승리자로 인정될 때까지는 영역을 두고 다툴 것이다. 그란트 장군은 자신의 작전에 대해 토론하면서, “온 여름이 걸린다 해도 이 전선에서 결판 낼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과학은 말한다; 모든 것은 마음과 마음의 아이디어이다. 당신은 이 선상(線上)에서 결판을 내야만 한다. 물질은 당신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다.
492:22
인간의 환상 안에서 마음과 물질이 죄악과 질병과 사망으로 뒤섞인다는 관념은 궁극적으로 마음의 과학에 굴복하여야 하는데, 이것은 그 관념을 부인한다. 하나님은 마음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은 무한하시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마음이다. 이 설명 위에 존재에 관한 과학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 과학의 원리는 조화와 불멸성을 실증하고 있는 신성(神性)의 것이다.
오랫동안 믿어져 온 보수적 이론은 두 가지의 요소가, 즉 어떤 불가능한 기반 위에서 결합되고 있는 물질과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진리와 오류가 항상 싸우도록 한다. 승리는 어느 편의 깃발 위에도 앉지 않는다. 반면에 크리스천 사이언스는 진리가 승리한다는 것을 재빨리 보여준다. 육신의 감각에는 해가 뜨고 지며, 지구는 정지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천체 과학은 이것을 부인하고, 태양계는 다른 방식으로 운행된다는 것을 설명해준다. 물리적 감각으로부터 온 모든 증거와 물리적 감각으로부터 얻은 모든 지식은 과학에, 즉 모든 것들의 불멸의 진리에 굴복하여야만 한다.
493:9
문 - 질병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치유되는지 설명해 주겠는가?
답 - 크리스천 사이언스의 마음-치유의 방법은 크리스천 사이언스의 실천이라는 제목을 가진 앞에 나온 장(章)에 언급이 되어있다. 위의 질문에 대한 충분한 답변은 가르침을 필요로 하는데, 그것이 치유자로 하여금 크리스천 사이언스 즉 형이상학적 치유의 원리와 규칙을 스스로 실증하고 증명할 수 있도록 해준다.
마음이 육신의 오감으로부터 오는 모든 믿음들보다 우월하고 모든 병을 파괴할 수 있음이 발견되어져야만 한다. 질병은 하나의 믿음인데, 이것은 신성의 마음에 의해 근절되어야만 한다. 질병이란 소위 필멸적인 마음이 갖는 경험의 일종이다. 그것은 신체상에 표현되는 두려움이다. 크리스천 사이언스는 윤리적 혹은 정신적 부조화에 대한 어떤 다른 감각을 제거해 버리는 것과 똑같이, 부조화에 대한 이러한 신체적 감각을 없애 버린다. 사람이 물질적이라는 것, 그리고 물질이 고통을 받는다는 것, - 이러한 주장들은 오직 환상 안에서만 실재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일 수 있을 뿐이다. 물질 안에 있는 혼의 어떠한 감각도 존재의 실재성이 아니다.
만일 예수님이 나사로를 죽음이라는 꿈, 즉 환상에서 깨우신 것이라면, 이는 그리스도가 그릇된 감각을 고치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었다. 사람을 완전한 상태에 영원히 흠 없이 보존하고, 사람의 전체 활동을 다스리는, 신성의 마음의 권능과 의지에 대한 이 최상의 테스트를 그 누가 감히 의심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말씀했다: “이 성전 [육신]을 허무시오. 내가 [마음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소.” 그리고 그분은 지친 인류를 안심시키기 위해 이 일을 하셨던 것이다.
메시아의 일과 같은 매우 위대한 일이 그 자신을 위해, 또는 영원한 조화를 보존하는데 예수님의 본보기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는 하나님을 위해 행해졌다고 믿는다는 것은 일종의 불신앙이 아닌가? 그러나 인간들은 이 도움을 반드시 필요로 하였으며,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 길을 가리켜 주셨다. 신성의 사랑은 인간의 모든 소망을 항상 이루어 주셨고 또한 항상 이루어 주실 것이다. 예수님이 단지 선택된 몇 사람들만을 위하여, 또는 제한된 기간 동안에만 치유하는 신성의 권능을 실증하셨다고 여기는 것은 옳지 않다. 왜냐면 모든 인류에게, 그리고 매시간 마다 신성의 사랑은 모든 좋은 것을 공급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은혜의 기적은 사랑에게는 기적이 아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무력함과 영의 무한한 권능을 실증하셨고, 그리함으로써 잘못된 인간적 감각이 스스로의 신념으로부터 도피하여 신성의 과학 안에서 안전을 찾도록 도와주셨다. 이성은 올바르게 지도하면 육신적 감각의 오류들을 바로 잡는데 이바지한다; 그러나 죄악과 질병과 사망은 사람의 영원한 조화에 관한 과학이 과학적 존재의 깨지지 않는 실재성으로 그것들의 환상을 깨어버릴 때까지는 (마치 수면 중 꿈의 경험이 실재하는 것으로 보이듯이) 실재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494:23
사람에 관한 이 두 가지 이론 가운데 당신은 어느 것을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나는 변화하며 죽으며 실재하지 않는 필멸의 증언이다. 다른 하나는 진리의 인침을 받은, 그것의 무릎 위에는 불멸의 열매가 높이 쌓인, 영원하고 실재하는 증거이다.
우리의 주님은 마귀들(악들)을 쫓아내시고 병자를 고치셨다. 그의 추종자들도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들과 다른 이들로부터 두려움과 모든 악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친다는 말을 들어야만 한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있을 때에는, 언제나 사람을 통해 병자를 고치신다. 진리는 19 세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확실하게 오류를 쫓아낸다. 진리의 전체가 이해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것의 치유 권능이 충분히 실증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만일 질병이 참이거나 진리의 아이디어라면 당신은 질병을 파괴할 수 없으며, 그것을 노력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주님이 병자를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자”라고 말씀하셨던 때 하셨던 것처럼 질병과 오류를 분류하라, 그리고 인간의 믿음에 작용하는 생명을 부여하는 진리의 권능, 묶여 있는 자들의 감방 문을 열어주고 포로 된 자들을 육체적으로 윤리적으로 해방시켜 주는 이 권능, 안에서 오류에 대한 최상의 해독제를 찾아라.
질병이나 죄악에 대한 환상이 당신을 유혹할 때,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과 그분의 아이디어에 매달리라. 그분의 모습 말고는 아무 것도 당신의 생각 안에 머물지 못하도록 하라. 두려움이나 의심이 당신의 분명한 감각과 평온한 믿음을 흐리게 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조화로운 생명을, - 즉 생명이 영원히 조화롭듯이 조화로운 생명을 - 인지하는 것이 생명이 아닌 것으로부터 오는 모든 고통스러운 감각이나, 생명이 아닌 것에 대한 믿음을 파괴할 수 있다. 육신적 감각 대신 크리스천 사이언스가 존재에 대한 당신의 깨달음을 지지하도록 하라, 그리하면 이 깨달음이 진리로 오류를 쫓아낼 것이며, 불멸성으로 필멸성을 대체할 것이며, 조화로 부조화를 잠잠하게 할 것이다.
495:25
문 - 내가 어떻게 해야 크리스천 사이언스를 이해하는데 가장 빨리 진보할 수 있겠는가?
답 - 그 자구(字句)를 철저히 공부하고 그 정신을 흡수하라. 크리스천 사이언스의 신성의 원리를 고수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며, 지혜와 진리와 사랑 안에 꾸준히 거하라. 마음의 과학 안에서, 오류가 오류를 파괴할 수 없다는 것을 곧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또한 악한 암시들이 한 인간으로부터 다른 인간에게로 전파될 수 없다는 것을 과학 안에서 배우게 될 것이다, 왜냐면 하나의 마음만이 존재하며, 이 상존하는 전능한 마음이 사람에 의해 반영되고 온 우주를 다스리기 때문이다. 크리스천 사이언스에서의 첫 번째의 의무는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 즉, 하나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고, 다른 이를 당신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생명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터득해야만 한다. 스스로에게 물어 보라: 내가 최고의 선에 가까워지는 삶을 살고 있는가? 내가 진리와 사랑의 치유 권능을 실증하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완전한 날에 이르도록” 가는 길은 점점 밝아질 것이다. 여러분의 열매가 하나님께 대한 깨달음이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증명할 것이다. 이 생각, -즉 모든 참된 존재를 아래, 위, 그리고 사방에서 에워싸고 있는 신성의 원리, 즉 사랑에 근거한 치유의 법칙을, 여러분이 과학적인 확실함을 가지고 실증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바로 영적 아이디어, 성령과 그리스도라는 생각을 꾸준히 품고 있으라.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능력은 율법이다”- 즉 불멸의 생명에 관한 사실들과 싸우는, 즉 무덤에게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고 말하는 영적 법칙과도 싸우는, 필멸의 믿음의 율법이다. 그러나 “이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또 이 죽을 몸이 죽지 아니함을 입게 되면, 그 때 사망이 승리 속에 삼킨 바 되었느니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다.”
496:28
문 - 크리스천 사이언스 신자들에게 어떠한 종교적 강령이 있는가?
답 - 만약 그 말이 교조적 믿음들을 의미한다면 그런 것은 없다. 다음이 크리스천 사이언스의 중요한 요점, 즉 종교적 교의에 관한 간략한 설명이다: -
1. 진리의 추종자들로서, 우리는 성경의 영감(靈感)에 의한 말씀을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충분한 지침(指針)으로 받아들인다.
2. 우리는 유일하시고 지고하시고 무한하신 하나님을 인지하고 섬긴다. 우리는 그분의 아들이신, 한분이신 그리스도; 성령 즉 신성의 보혜사;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이며 모습으로서의 사람을 인지한다.
3. 우리는 죄를 파괴함을 통한 하나님의 죄악을 용서하심과 악을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내어 쫓는 영적 깨달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죄에 대한 믿음은 그 믿음이 지속되는 한 벌을 받는다.
4. 우리는 예수님의 속죄를, 인도자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통한 사람의 하나님과의 일치를 드러내는, 신성의 유효한 사랑의 증거로서 인정한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것, 즉 병자들을 치유하고 죄악과 사망을 극복함을 통해서 그 갈릴리 예언자에 의해 실증된 바와 같이 진리, 생명, 그리고 사랑을 통하여 구원받는 다는 것을 인정한다.
5.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수난과 그분의 부활하심이 영원한 생명을, 나아가 혼 즉영의 전체성(全體性)과 물질의 무존재성(無存在性)을 깨달을 수 있도록 신앙을 고양시키는데 이바지하였음을 인정한다.
6.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도 있던 그 마음이 우리 안에 있도록 경계하고 기도할 것;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그들에게 해줄 것; 그리고 자비롭고, 정의롭고, 순결할 것을 엄숙히 약속한다.